🎵 아이돌 잡담

한국어 노래 vs 중국어 노래

꼬모🐱 2015. 2. 28. 02:00

나는 본래 가사를 꽤 빨리 외우는 편인데, 웃기게도 막상 엑소 노래는 가사를 잘 모른다. 타이틀곡 외의 수록곡 중에 가사를 제대로 기억하는 곡이 손에 꼽을 정도다. 나비소녀랑 베돈크 정도인 듯. 이유는 간단하다. 중국어 버전을 훨씬 많이.. 아니 거의 중국어 버전만 듣다시피 하기 때문임. 이 경우 두 가지의 문제점이 발생한다. 첫째, 내가 중국어를 모르기 때문에 아무리 노래를 여러 번 들어도 못 알아들음. 병음이나 해석을 보면서 들어도 기본적으로 모르는 언어이기 때문에 기억하는 데에 절대적인 한계가 있다. 어투나 느낌은 머릿속에서 맴도는데 정확한 발음이나 의미는 전혀 기억이 안 나기 때문에 입으로 내뱉을 수가 없다. 둘째, 중국어 버전을 많이 듣는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어 버전을 안 듣는다는 의미. 결국 한국어 버전은 자주 안 들어서 모른다. 결론적으로 한국어 가사도 중국어 가사도 모르는 아름다운 사태에 직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콘서트는 얼마 남지 않았는데 기억나는 한국어 가사는 거의 전무하여, 가사도 외울 겸 오늘 한번 중국어 버전과 한국어 버전의 가사를 비교하면서 들어 보기로 했다. 방식은 간단하다. 중국어 가사 해석본을 눈으로 읽으면서 한국어 노래를 듣는 거다. 근데 이거 생각 외로 너무 재밌다. 한자가 표의 문자인 만큼 중국어 가사가 상대적으로 담고 있는 내용이 더 많을 수밖에 없는데, 이 기본적인 언어(문자?)의 차이에서 오는 어감의 차이가 굉장하다. 어떤 노래에서는 중국어 가사가 지나치게 많은 뜻을 우겨 넣어 한국어 가사에 비해 과하다는 느낌이 드는 한편 어떤 노래에서는 한국어가 중국어의 함축성을 따라가지 못해 내용이 덜 채워진 듯한 느낌이 든다. (*이 부분을 쓰면서 든 의문. '함축성' 이라는 개념을 중국어에 적용하는 것이 맞을까 아니면 한자에 적용하는 것이 맞을까? 문자와 언어는 기본적으로 별개의 개념이라고 배웠는데, 중국어와 한자의 경우 문자의 함축성을 언어가 따라가는 것인지 아니면 언어의 함축성을 문자가 따라가는 것인지 모르겠음.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 류의 의문이랄까? 혹 내가 전혀 틀린 생각을 하는 건가? 흥미로운 언어의 세계) 새삼 엑소 노래는 작사가들의 엄청난 노동의 산실임을 깨닫게 됨. 기본적인 내용을 통일하면서 동시에 노래에 맞춰서 가사를 짜맞추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닐 터인데.. 경의를 표합니다 ㅠㅠ

 

여튼 오늘 이런 식으로 비교해 보면서 들은 노래는 월광, 나비소녀, 베돈크다. 전부 발라드 곡인 만큼 가사의 어감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했음. 나비소녀는 한국어 압승, 월광이랑 베돈크는 비슷한데 근소한 차이로 월광은 중국어 버전이, 베돈크는 한국어 버전이 더 낫다. 중국어를 기준으로 자연스러움의 정도를 판단해 보자면 월광>>베돈크>>>>>>>>>>>나비소녀가 되겠음.

일단 나비소녀는 한중버전 가사가 엄청 다르다. 놀랐음. 한국어 가사는 동화처럼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흐름을 보이는 반면 중국어 버전의 가사는 나비소녀 특유의 동화같은 느낌이 거의 없다. 예를 들면 이런 부분.

 

조그만 날갯짓 널 향한 이끌림

→ 你小小的翅膀 就要向我飞翔 / 너의 작은 날개가 나를 향해 날아와

왈츠처럼 사뿐히 앉아 눈을 뗄 수 없어

→ 闪著泪光 我真不忍心 眼看著你受伤 / 반짝이는 눈물, 나는 네가 상처받는 걸 참을 수 없어

시선이 자연스레 걸음마다 널 따라가잖아

→ 就算一秒或是到永远也好 我都确定方向 / 설령 잠시라도 영원하다면 난 갈 곳을 정했어

너는 뽐내 우아한 자태

→ 请看看我 别躲开爱情  /날 바라봐 사랑을 피하지 말아줘

 

뭔가 '나비'라는 소재에서 오는 서정적인 느낌이 거의 사라지고 흔한 사랑 노래가 된 느낌? 그냥 멜로디+한국어 가사의 기본적인 느낌만 최소한으로 끼워맞추는 번역투의 느낌이 강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나비소녀는 비유적인 가사가 굉장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중국어 가사는 곡을 너무 풀어 써서 지나치게 많은 의미를 담았다는 느낌이라 해야 하나. 여튼 별로.

월광의 경우 내가 한국어 버전을 중국어 버전만큼 좋아하는 몇 안되는 곡 중 하나다, 한국어 버전만 들을 때에는 가사가 세련되게 잘 빠졌다고 생각했는데 중국어 가사와 비교하면서 들어 보니 중국어에 비해 가사가 빈약하게 느껴져서 좀 놀랐다. 중국어 가사가 훨씬 자연스럽고 시적이라 느껴지는 한편, 한국어 가사는 의미를 맞추기 위해 '번역'했다는 느낌이 드는 파트가 몇 보이더라. 베돈크의 경우 랩을 제외하면(랩은 플로우 때문에 그런가 웬만한 노래는 가사가 정말 많이 다른 것 같다) 중국어와 한국어 가사가 거의 같다시피 한데 일부 파트에서 중국어를 한국어에 끼워맞춘 듯한 번역투의 냄새가 심하게 났고, 나비소녀와 마찬가지로 인어공주라는 테마를 잘 살리지 못한다고 느껴지는 파트가 군데군데 보였다. 아.. 중국어 가사 복사해오기 귀찮으니까 가사는 걍 나중에 끼워넣어야겠음.

 

엑덕질을 하면서 중국어의 매력을 점점 알아가고 있는데, 참 오묘한 언어인 듯. 어떤 면에서는 지나치게 많은 의미를 한꺼번에 전달하는 언어라는 느낌도 들고, 어떤 면에서는 함축적이고 서정적인 언어라는 느낌도 들고. 중국어 특유의 양면성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그런지 가사 해석본의 느낌도 찾아보는 블로그마다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어떤 해석본을 채택해서 봐야 하는지도 상당히 고민이 된달지. 내가 이해하는 중국어는 누군가의 자의적인 해석을 거친 결과물을 토대로 하는 만큼, 원문 그대로의 느낌을 내가 이해할 수는 없다는 게 아쉽다. 내가 느끼는 중국어 가사의 느낌이 과연 중국어 화자들이 느끼는 느낌과 부합할지 궁금하고, 순전히 한국어 사용자의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나의 감상과는 달리 중국 팬들은 중국어 가사를 어떤 느낌으로 감상하고 있을지 매우 궁금함. 아아 아무리 생각해도 언젠가 저는 중국어 공부를 하게 될 것 같습니다. 겁나 매력적이야.

 

노래 얘기를 했으니 보컬 얘기를 안 하고 지나갈 수가 없는데.. 내가 중국어 노래를 훨씬 많이 들었던 이유는 M의 보컬 조합이 더 내 취향에 부합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한 명은 리드보컬이긴 했지만, 어쨌든 흔히 메인보컬로 묶이던 4인방 중에서 나는 경수와 루한의 목소리를 굉장히 좋아했다. 저는 부드러운 목소리에 껌뻑 죽거든요 ㅎㅎ K의 경우, 경수와 백현이의 보컬합이 썩 좋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백현이의 창법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내 기준 매우 탁한 느낌인데다 창법도 목에 힘이 많이 들어가고 긁는 듯한 소리를 내서 듣기가 다소 힘들기 때문임. 경수는 일단 음색이 부드러운 데다, 음역대가 좁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목에 힘이 들어가는 느낌이 덜해서 보컬이 훨씬 자연스럽게 들린다. 근데 참 이상한 것이, 따로 들으면 두 사람 목소리가 구별이 잘 되는데 둘이 합쳐 놓으면 목소리를 구별하기가 힘들다.. 경수가 백현이 보컬에 동화되는 느낌이 듬. 결과적으로 K 보컬 둘이 만나면 내 귀에는 백현 두명이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에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M의 경우, 종대 보컬도 부드럽다기보다는 많이 쨍한 느낌이라 내 스타일은 아닌데, 루한의 미성이 여기에 섞여들어가면서 중화되는 것이 M보컬의 가장 큰 매력이었음. 둘의 스타일은 전혀 다르지만 보컬합은 꽤 잘 맞았다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난 내가 좋아하는 목소리가 다른 메인보컬의 단점(내 기준에서)을 커버할 수 있는 보컬합을 선호했고, 그래서 M의 노래를 더 많이 들었던 것임. 물론 구최애가 M에 있었다는 것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튼..! 가사 비교하면서 듣는 거 정말 재밌다. 이 재밌는 걸 왜 이제 알았지? 싶은 생각이 듬. 확실히 엑소라는 그룹만이 가지는 강점이나 재미가 이런 부분에서 온다는 걸 오늘 또 한번 실감함. SM 기획력 하나는 제가 정말 인정합니다 제 절을 받으세요..

뮤비를 찍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걸 보니 컴백을 하긴 하는 모양. 어떤 컨셉으로 나올지 매우 궁금하고, 특히 내가 궁금한 것은 보컬 배치다. 가뜩이나 보컬 부족한 엑소에서 보컬의 한 축을 담당하던 놈이 하나 빠졌으니 보컬 배치에 꽤 변화가 생기지 싶다. 일단 멤버는 크리스마스 앨범 때처럼 KM 가르지 않고 근본없이 섞어놓을 것으로 예상. 앨범도 예전까지는 무조건 중국어반을 샀는데, 이번에는 음원 신중하게 들어보면서 보컬 배치 상세히 판단한 뒤에 맘에 드는 쪽을 구매할 예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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